객석 600여 석이고 1935년 10월 준공되었다. 평양 출생의 유지 홍순언(洪淳彦)과, 배구자(裵龜子)악극단을
이끌던 배구자가 당시 19만 5000원을 들여 지은 국내 유일의 연극전문극장이었다.
이 극장은 회전무대 ·호리존트 등을 갖추고 1935년 11월 1일 개관공연의 막을 열면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 극장의 출현으로 당시 연극상설극장의 건립을 염원하던 많은 연극인들의 숙원이 풀리게 되었다.
연극을 자체적으로 소화하기 위하여 일반연극의 청춘좌, 사극 중심의 동극좌(東劇座), 희극 중심의 희극좌 등
전속극단을 두고, 연중무휴로 연극을 공연하였다.
연극연구소를 설치하여 신인을 양성, 많은 인재들을 연극계와 영화계로 내보냈으며, 전속극단 단원의 보수도
이제까지의 일급 또는 무급제도를 없애고 월급제도를 실시하는 등 획기적인 운영방식을 채택하여 연극인의
사기를 높여주었다. 따라서 동양극장에는 많은 연극인이 모여들어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대중연극의
메카로 군림했는데, 1950년대 이후 한때 영화관으로도 쓰이다가 1976년 2월 폐관되고, 1995년 철거되었다.
- 백과사전 -
1995년에 철거되었다고하니 이제 13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당시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고,
표지석을 세워놓아 이곳에 위치해 있었다는 증거로 남아있다.
행정구역상 서대문구 충정로로 확인되는데, 지금은 문화일보건물이 들어서 있다.
돈의문터와 접해있고, 조선충신 김종서의 집터와 이웃해 있으며, 김구선생이 최후를 맞은
경교장이 삼성병원내에 함께 위치해있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을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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