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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리 & Column

부모를 모신다는 것.

by 江山 2008. 12. 17.

 

 

 

오늘은 TV 아침프로에 105살이나 되신 할머니와 그 아래로 줄줄이 5대가 함께사는

가족의 내용을 방영했다.

자세히 보질못했지만 할머니의 손자가 환갑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모이고 할머니에게

절을 하니 할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신다.

정말로 복을 많이 받고 사시는 노인임에는 틀림없는 듯 했다. 오래 오래 사세요.


환갑이 된 손자는 말한다. 아직까지 어른을 모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할머니 스스로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기에 모신다는 의미보다는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모신다고 함은 숟가락질을 대신하고, 대소변을 대신하며 스스로 수족의 놀림을 내가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처리되어 질 때, 비로서 모신다 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활의 방식이 바뀌다보니 부모님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싫어하고, 

또한, 다만 같이 살아가고 있는것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

할아버지 말처럼 같이 사는 것과 모시고사는 것은 분명 의미가 다르다.

그러고보면, 그야말로 식물인간으로 자리를 보전하고있던 친정엄마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온 우리 마눌의 효녀됨은 칭찬하기에 충분하다고 보여지는 대목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늘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지만, 환경이 바뀌다보니 스스로도 할 일을 다 못하고

사는 불효막심한 놈으로 전락해버리고 오늘을 살고 있지만서두...


또한, 부모된 마음자세에서도 우리는 눈여겨 볼일이 있다.

요즘의 젊은 부부들을 보면 이제 새끼하나 낳아서 밤과 낮의 구분 없이 울어 제끼고

똥오줌 갈아주는 수고로움이 힘들다며 “이제야 새끼 낳아서 키워보니 부모님 심정을

알겠다“ 라고 씨부리는 아직도 철이 한참 들어야할 사람들의 말들을 자주 듣곤 한다.

 

부모됨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내가 그 당시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고 또한 자식들의

성장과정을 겪으면서 벌어지는 무수한 일들을 경험하지 않고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된다고 보여 진다. 

삐약거리는 새끼하나를 놓고 부모입장을 이해한다면 세상에 부모 아닌자가 어디있으며,

효자아닐자 누가 있으며, 부모의 역할과 어른됨이 무엇이 어렵겠는가.

그래서 부모는 남의자식 탓하지 말며, 부모된자로 죄인이 되고 만다.

 

년말을 맞으며 부모를 생각하고, 자식된 입장과 또한 부모된자로서의 위치를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