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언제나 잊혀지지않는 한 곳이 있습니다.
어렸을적 자라던 고향은 기억속 그 상태로 세월의 변함과는 관계없이 머리속에 각인되어 언제나 남아있는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무지막지한 깡촌이지만 그래도 내게는 잊지못하는 그리운 장소입니다.
고향을 떠나서 40년만에 찾아본 학교교정은 이제 폐교가되어 쑥대밭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리움이 배어있는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찾아 그림으로 남겨봅니다.
그 옛날에도 정문은 이곳에 있었습니다. 좌측에 있는 벚나무가 그때도 있었던것 같다.
지금은 시멘트구조물로 새롭게 지어진 학교 본관인데 예전에는 벽면이 송판으로 지어진 일본식건물이었다. 돌계단이었던 곳이 시멘트구조로 바뀌어 있다.
이 건물자리가 내가 3학년이었던 시절의 교실이었다.(1968년)
지금은 쑥대만이 무성하다.
점심시간엔 도시락을, 쉬는시간에 오르던 교정 뒷산.
당시엔 가난해서 학교에서 옥수수죽을 배급했고, 교내에서 직접 옥수수빵도 쪄서 나눠주었다.
연못이있던자리였다. 이 연못에는 자라가 살고 있었다.
당시에는 꽤나 넓은 운동장이어서 가을운동회때는 성대하게 대회가 치뤄졌고, 청군이겨라! 백군이겨라!하는 함성이 지금도 생생히 들리는듯하다. 운동장 주변에는 주로 벚나무가 있었던걸로 기억되는데,지금은 잦나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당시에는 없었지만, 폐교된 운동장의 축구골대가 녹슬어있다.
시소, 철봉대도 숲속에 묻혀있다.
그 넓었던 운동장이 지금에와서보니 손바닥보다도 작을듯 하다.
겨울엔 반대편 솔밭에서 솔방울을 땔감으로 줏어오던 기억들도 있다.
교정뚝에 버티고있는 잣나무와 소나무는 40년전 당시에도 커다란체로 버티고있었다.
창고가있는 이 자리에는 땅굴을파서 토끼를 기르던 토끼장이었다.
내가 학교에 입학하기도전에 살았던 집이었다. 아직도 남아있음이 신기할 정도다. 진입로도 그대로다.
잣나무가 울창한 산넘어 뒷편에 살았었는데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지금은 군사지역으로 점령되어 민가들은 흔적도없이 사라져버렸다. 이곳에서 동생하나를 잃었다.
물레방아도있고 돌다리도있었던 곳.
이후 알퐁스도데의 별이란 작품을 공부하면서 나는 이곳을 생각했었다.
이곳에는 유일하게 발동기방앗간이 있었고, 달걀하나와 학용품을 맞바꾸었던 닭장그물의 구멍가게도 있었던 곳인데 지금은 흔적도없이 사라졌다.
40년이지난 지금도 구석구석 눈에 선한 고향산천이다.
장마당을 나오려면 높고도 험한 이 고개를 넘어야했다.
지금은 이쪽 저쪽 도로포장이 다 되어있었지만 유일하게 이 고개만 비포장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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