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일시 : 2008년 1월 14일(월) ~ 1월 18일(금)
채 널 : KBS 2TV 오후 7:25 ~ 7:55
프로듀서 : 김용두
올해 여든 여섯의 어머니는
학교 한 번 다니신 적 없지만, 동네에서는 별명이 신문기자였다.
아버지가 일찍이 빚만 남기고 돌아가신 뒤
농사며, 누에치기며, 길쌈이며...
혼자 힘으로 7남매를 기르셨다.
경우 바르시고, 일 잘하시고, 엄격하셨던 어머니.
그런데... 어느 날부터
기운이 쑥 빠지시더니, 화장실 가는 일이 제일 어렵다 하신다.
여든이 넘어 다시 아기가 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산골로 들어간 막내아들.
매일 아침, 세숫물도 갖다 바치고, 머리도 곱게 빗겨드리며
온갖 수발을 다 들어드리는 아들이지만
‘저게 언제 사람이 될꼬...’
어머니 눈에는 농사일이며, 살림이며 서툰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늙고 병들었어도 여전히 자식걱정 뿐인 어머니,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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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모시기
전북 장수군 덕유산 중턱, 고즈넉한 오두막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전희식 씨(50세).
오랫동안 사회운동 현장에서 치열하게 활동해온 그는 10여 년 전, 귀농을 했다.
하지만 농사꾼이 되어서도 정작 농사보다는 이주여성문제, 대안학교운영 등 다른 일에
더 바빴다.
그런 그가 1년 전부터 가장 많은 정성과 손길을 쏟는 대상이 생겼으니 그것은 농사도,
사회활동도, 처자식도 아닌 어머니.
거동이 불편하신데다 약간의 치매를 앓으시는 어머니는 오랫동안 서울 큰 형님 댁에서
지내셨는데, 형제 중에 제일 속을 많이 썩여드렸다는 명분으로 1년 전, 막내아들인 희식 씨가
산골로 모시고 온 것이다.
안락하고 편하기는 하지만 종일 방안에서 가만히 수발만 받는 서울 생활보다는
물 맑고, 공기 좋고, 어머니가 소일거리로 하실 수 있는 농사일들도 지천에 널린
산골생활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
하지만 어머니를 모시는 일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던 큰 형님 가족들, 그리고 갑자기 어머니를 모실 수도, 안 모실 수도 없는 아내의 입장을 헤아려야 했다. 작전을 방불케 하는 노력 끝에 가족들의 동의를 얻은 희식 씨.
남들은 ‘고생 많다~ 효자다~’라고 말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덕분에 막내가 형님들의
문안도 받고 산다며 ‘나는 아직도 어머니 덕에 먹고 산다.’고 웃으며 말한다.
# 콱, 죽고 싶었던 세월
일찍이 혼자가 되셔서 칠남매를 기르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던 어머니의 젊은 시절.
희식 씨의 기억에 어머니는 농사일에 누에치는 일까지, 며칠 밤을 예사로 새우고는 하셨다.
‘약이라도 먹고 콱 죽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던 어머니.
그 독한 말씀이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말보다 몇 배는 더 독하고 고단했을
어머니의 삶이 먼저 아프다.
주무시면서도 길쌈을 하 듯 손을 조금씩 움직이시는 어머니,
꿈속에서는 아직도 일을 놓지 못하고 계신가보다.
‘자식들을 건장하게 완성해내는 동안 어머니는 이렇게 약해지셨구나.’
어머니의 사라진 젊고 아름다운 시절이, 다 자란 아들의 눈에서 눈물로 녹아 흐른다.
# 어머니의 하루
<10월 17일 수요일>
오늘 새벽에 3시에 일어난 것은 오로지 지독한 지린내 덕이었다.
어머니는 이불을 다 걷어 놓고 옷에 오줌을 누시고는 꼼짝도 않고 누워 계셨다.
어젯밤에 주무실 때도 끝내 요를 깔지 않고 주무시더니
오줌기가 있자 이불부터 다 걷어 내고 오줌을 누신 것 같았다.
어머니가 깨끗이 옷을 갈아입고도 기가 죽어 있으시길래 전병을 한 조각 갖다 드렸더니
"이거 묵으믄 오줌 안 누나?" 하신다.
하하 웃으며 그냥 잡수시라고 하니 마른 과자 먹으면 물 먹어야 하는데 안 먹겠다고 했다.
"나는 먹는 거는 참아도 돼. 배고픈 것도 참아도 되는데 똥 오줌은 와 못 참으꼬?" 하면서. |
아기엄마가 육아일기를 쓰듯 어머니와의 하루를 기록하며
희식 씨는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와 같은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오늘 어머니는 아들에게 무시국 끓이는 법을 일러주었고, 가을에 수확한 콩과 팥의 쭉정이를
갈라냈고, 직장 때문에 떨어져있는 며느리대신 아들의 바짓단도 꿰매었다.
거동이 불편하고 정신이 없으신 중에도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시는 어머니.
희식 씨는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울 때만이 인생이 아니라
늙고 병든 모습도 삶을 이루는 소중한 부분임을 매일 새롭게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