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4일 (금) 창경궁과 창덕궁을 돌아본다.
조선 전기 제3대 태종5년(1405) 당시 건립된 궁궐로 광해군 때부터 정궁으로 사용되었다.
5대궁궐로 궁의 동쪽에 세워진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처음에는 임금이 사는 궁궐인 법궁이 아닌 이궁으로 1405년 창건되었다.
이후 임금들이 창덕궁에 머무는 것을 선호해왔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복구되지 못하면서 창덕궁이 고종 때까지 법궁의 기능을 했다.
뒤쪽에 후원(비원)이 있다.
▼창덕궁 회화나무
돈화문인 정문을 들어서면 좌우측으로 4그루씩 8그루의 400년 된 회화나무를 만난다.
3정승을 상징하기 위함이라는데 동궐도에도 그려져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진선문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를 건너 정전으로 가기전의 중문이다.
경복궁의 경우도 광화문을 지나 근정문으로 가기전 흥례문이 중문이다.
▼숙장문
궁궐의 외조 권역에서 내전을 볼 수 없게 만든 문이다.
▼인정문과 인정전
▼인정전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궁중 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
▼내부의 마루와 전등, 커튼, 유리창문 등은 1908년(융희 2)에 서양식으로 개조한 것이다.
▼희정당
원래는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침전 건물이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편전으로 기능이 바뀐 건물이다.
▼선정문과 선정전
왕이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便殿)이다.
현재 궁궐에 남아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성정각
세자의 교육장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내의원으로 쓰기도 했다.
▼궐내각사
궁궐 내의 관청을 의미하며,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기 위해 특별히 궁궐 안에 세운 관청이다.
인정전 서쪽 금천교 뒤로 동편에 약방(내의원), 옥당(홍문관), 예문관이 위치하고
서편에 내각(규장각), 봉모당(奉謨堂), 검서청(檢書廳) 등이 있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2000~2004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약방
▶홍문관(옥당)
조정의 문서관리와 왕의 각종 자문기구의 업무를 맡아보던 곳.
또한 옥같이 귀한 집이라는 뜻으로 각종 책을 보관하거나 왕이 공부하거나 경연을 하기도 했다.
▼검서청
규장각에서 서책을 교정하거나 원본과 똑같이 베끼는 일을 맡아보던 검서관들이 사무를 보는 곳.
▼규장각
조선시대 왕실 도서관이면서 학술 및 정책을 연구한 관서.
▼낙선재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로 사용하던 건물로 1847년(헌종 13)에 지었다.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며 후원에는 세련된 굴뚝과 괴석들을 배열하여
궁궐의 품격과 여인의 공간 특유의 아기자기함을 볼 수 있다.
낙선재 일원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 순정황후와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
덕혜옹주 등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가족이 생활 하다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낙선재
▼석복헌
헌종의 후궁 경빈의 처소였다.
▼수강재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의 처소였다.
덕혜옹주는 이곳에서 1989년까지 거처했었다.
▼상량정(上凉停)
시원한곳에 오른다라는 뜻으로 높은지대에 정자가 시원스레 앉아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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