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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하는 습관은 누구에게서 비롯됐을까. 성경의 ‘창세기’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은 이렇게 변명한다. “하나님이 주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먹었나이다.” 제 탓은 없고 하나님 탓이요, 아내 탓이다. 인류 조상의 이 치사한 ‘변명 유전자’는 곧바로 아들에게 대물림된다. 아벨을 죽인 가인은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물음에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하고 시치미를 뗀다. 변명은 어쩌면 원죄를 지은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하늘 탓을 했지만 항우는 적어도 비겁하지는 않았다. 강동(江東)으로 가 후일을 도모하라는 권유를 물리치고 자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우처럼 사람 죽이기를 파리 잡듯이 했던 냉혈한들을 보면 대개가 용렬하다. 유고의 독재자 밀로셰비치 같은 자는 인종 청소를 “국민을 보호하려는 정의의 실현”이라고 강변했다.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독일의 아돌프 아이히만은 “나는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발뺌하기도 했다. 끝까지 면피해 보려는 가소로운 변명들이다.
금간 광화문 현판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한다. 문화재청은 “우리나라 소나무의 일반적 현상”이며 “구조적인 문제점은 없다”고 밝혔다. 목재도 충분히 건조된 것을 썼다는 해명이다. 사람들 잘못은 없다니 저절로 금간 소나무가 죄인인 셈이다. 실패는 용서해도 변명은 용서하지 말라고 한다. 변명하는 한 실패는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광화문은 그렇다 치고 복원 중인 남대문이 슬슬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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