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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리 & Column

궁시렁 궁시렁

by 江山 2009. 10. 9.

 

 

산행을 준비한다.

혼자 하는 여행은 간단해서 좋다.

식수와 허기를 면할 수 있는 컵라면 한 개, 과일한쪽, 커피한잔만 준비하면 족하다.

땀 흘린 후에 전망 좋은 명당에서 세상을 발아래 굽어보며 마시는 커피한잔과 시원한 바람을

맞이한다면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행을 여럿이 하게 되면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도 신경 쓰이고 말만 많아지니 조용히

생각해야 할 기회를 놓쳐버린다. 그래서 혼자하는 여행은 또다른 맛이 있다.


오래전에 설악산 대청봉을 올랐던 적이 있다.

서너명이 짝을 이뤄 출발했는데, 준비물은 다 챙겼으니 그냥 가기만하면 된다나.

그래서 걱정 없이 떠났다. 그러나 이것저것 계산 착오가 생겼다.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던 기본 체력을 자신했기에 사전준비 없이 高山을 오른다는 것이 무리였다.

다리가 움직여주질 않아 개고생을 했다.

하지만, 나로 인해 일행에 걱정을 끼치면 아니되기에 어려움을 감수해야했다.   

대청에 도착했을 땐 너무 추웠다. 중청대피소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컵라면 한 개에 추위에 얼어버린 김밥 한 줄 뿐이었다.  이거 해도 해도 너무했다.

동래 뒷산을 가는것도 아닌데 고작 준비했다는 것이 요로코롬 빈약할 줄이야. 나원 참.

욕도 할 수 없어 꾹꾹 눌러 참았다. 배가고파 죽을뻔한 어려운 산행을 한 기억이 있다.

오색리에서 출발하여 대청, 중청 서북능선을 타고 한계령으로 내려오는 아홉시간의 산행길을

그야말로 수도자가 걷는 고행의 길을 비로서 걸었던 것이다. 

  

서울의 근교산은 여기에 비해 간단한 준비면 된다.

땀을 닦으며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속에는 엊그제 추석명절에 쓰였던 과일 몇 개를 담았다.

감 하나를 꺼내어 맛있는 상상을 하며 껍질째 깨물었다.

어라!  떫은맛이 난다.  껍질을 까지않아서 그런거겠지 하며 말랑해진 감을 처녀가슴 다루듯

조심스럽게 벗겨낸다. 하지만 떫은 독소는 여전하다.

개떡 같은 종자의 감인가 보다. 이런 감을 차례상에 진설했다니 모처럼 찾아오신 조상님에게

싸가지 없는 것들이라고 개욕을 먹어도 싸다 싸.

 

순전히 마누라의 손에 의해 제수거리를 마련했는데,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제사가 있거나 명절때면 제수를 준비하는 대부분 살림을 맡은 여자들의 손에 의해 준비되는 것이

다반사일 것이다.

수고하는 마음을 덜어주기 위해 짐꾼을 자청하고 시장을 졸졸 따라다니다 보면 굵고, 예쁘고 잘

생기고 윤이 반질반질나는 빛깔 좋은 과일들이 지천에 있건만, 모두 제쳐두고  조금은 작고

갯수가 많은 쪽을 고르고 있다.

때깔 좋은 것은 비싸다는 이유로 가격이 좀 싼 쪽으로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다.

언제는 아이를 가졌을 때 예쁜아이를 낳기 위해 예쁜 것만 골라먹어야 하고, 조상님의 음덕을

기리기 위한 제사상에는 좋은 과일을 써야한다더니, 지금의 이 선택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쪼까 속이 배배꼬이는 일이더라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지켜볼 일이다.

친정도 아닌 시집조상에 무슨 정이 있어 정성을 쏟을 것이며, 더더욱 잔소리를 들어가며 상차림

하는 것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게 편할 것 이란 생각에

이른다.

여성이 큰소리치는 세상에 괜히 돈도 못 벌어다주면서 꺼떡거리다가 두들겨 맞고 쫓겨 나기까지

한다면 더욱 비참한 꼴이 되고 말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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