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9대)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던 대한제국의 정궁이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소실되어 1593년(선조26)부터 선조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다가 광해군이
1611년(광해3) 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경운궁으로 불렀다. 조선말기 러시아공사관에 있던 고종이 이곳
으로 옮겨온다.
고종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순종이 왕위를 물려받으며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고종에게 장수를 비는 뜻으로
덕수라는 궁호를 올렸다고 한다.
수문장 교대식과 기마병.
중화문과 중화전.
경운궁의 정전(正殿)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
자격루. 흥천사 종. 신기전.
석조전(石造殿).
고종황제가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1900년부터 1910년에 걸쳐 지은 서양식 석조건물이다.
덕홍전(德弘殿).
명성황후의 혼전으로 사용되었던 경효전이 위치했던 곳으로, 고종황제가 고위 관료와 외교 사절을 맞이하는
접견실로 사용되었다.
덕홍전 내부는 천장의 샹들리에나 봉황무늬의 단청, 창방의 오얏문양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함녕전(咸寧殿).
1897년에 건립된 왕의 침전이다. 1904년 화재로 소실후 중건. 고종이 이곳에서 68세의 일기로 승하하였다.
석어당(昔御堂).- 인조반정.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 김씨가 10여년간 감금생활을 했던 곳이다.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왕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형제들을 차례로 제거하고 인목대비를 폐위
시켜 경운궁에 유폐했다. 이때 경운궁은 서궁으로 서궁 유폐는 인조반정을 일으키는 구실이 되었다.
반정에 성공한 능양군(인조)은 경운궁으로 인목대비를 찾아가 정통성을 인정받고 여기서 즉위한다.
유폐의 한이 맺혀있던 인목대비는 석어당 앞마당에서 광해군을 꿇어앉히고 36조의 죄를 물은 후 능양군에게
옥새를 전하였다.
석어당 측면.
즉조당(卽祚堂).
임진왜란 때 선조가 임시로 거처했던 곳.
준명당(浚明堂).
황제가 업무를 보던 편전이며, 즉조당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현재의 세건물(석어당. 즉조당. 준명당)은
1904년에 소실된 후 같은 해에 중건된 것이다.
현재 준명당은 보수관계로 가림막이 쳐져있어 사진이 없다.
정관헌(靜觀軒).
고종황제가 차를 즐기고 음악을 듣던곳으로 동양 및 서양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커피를 좋아했던 고종독살 미수사건ㅡ 역관출신 김흥륙은 고종의 눈에들어 승승장구했으나, 통역을 빙자해
국정을 농단한 것이 발각되어 유배형을 받자 이에 앙심을 품고 고종과 황태자가 즐겨마시는 커피에 독약을
넣은 사건.
후 원(後 園)
세종대왕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