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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온 글

용대리 황태마을/신문스크랩/

by 江山 2008. 2. 5.

無에서 有창조’ 주민 1인 연소득 2만달러

[세계일보   2007-12-28 10:00:59] 

        (고향에서 군의회의원으로 활동하고있는 친구녀석이 소개되었기에 스크랩을 해봅니다.)

 

인제 용대3리의 마을 밭은 거의 덕장으로 뒤덮여 있다.

 

[작가 임동헌의 우리 땅 우리 숨결]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황태마을

웬만큼 땅덩이가 큰 나라 사람들은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얘기하기 일쑤다. 그러나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이고 산이 많으니 웬만큼 큰 나라의 기후 변화가 무색할 정도다. 그중의 대표적인 곳이 인제군 용대리 황태마을이다. 동해에서 불어온 바람이 미시령을 건너 당도하고, 내륙에서 불어온 바람이 용대리에 닿으면 전국 평균 기온보다 5도, 10도 내려가는 곳이 용대리인 것이다.

                     ◇용대3리 광장 건너의 매바위의 빙벽을 오르고 있는 빙벽 등반가.

 

그런 탓에 예전에는 ‘땅 그냥 줄 테니 농사 지으라’고 하면 도망가기 일쑤인 곳이 또한 용대리였다. 볕이 들지 않아 밭농사 논농사가 되지 않으니 땅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는 사람을 아무도 잡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농촌 마을의 평균 연령이 60세를 넘는 농촌 공동화 시대에 이곳 용대3리는 30대, 40대, 50대 주민이 50퍼센트를 넘는다. 국민 소득 2만달러 시대에 농사를 짓지 않는 마을 사람들의 연평균 소득이 2만달러를 웃도니 도시 사람들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의아해할 일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의 해답은 황태에 있다. 명태는 바다에서 잡을 때의 이름이고, 명태가 육지에 오르면 이름이 달라진다. 북한에서 잡으면 북태, 남한에서 잡아 말리면 북어, 용대리와 대관령에서 얼렸다 녹였다 해가며 말리면 황태가 되는 것이다.

황태가 왜 인기일까. 명태가 얼고 녹으면서 생기는 것이 아미노산. 그래서 용대리 주민들은 외길로 황태 사업에 올인하기 시작했고 그게 벌써 40년 가까이 된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영하 20도, 30도의 추위 속에서 덕장을 만들고, 덕장에 명태를 걸어 황태를 만드는 일에 매진한 것이다.


 

 

◇덕장에 걸린 명태들. 명태는 한겨울 내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별미를 내는 황태로 변해 간다.

용대3리에 이르니 매바위 아래쪽 절벽에는 얼음이 얼었고, 그 빙벽에는 대전에서 왔다는 빙벽 등반가들이 외줄에 매달려 한겨울 추위와 씨름하고 있다. 미시령과 진부령의 갈림길이 되는 광장에는 용대리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현대 공법으로 우뚝 서 있다. 전망대를 세우고, 전국에서 빙벽 등반가들이 몰려들게끔 아이템을 도입한 사람은 용대3리에서 나고 자란 황태영농법인 대표 이강열(48)씨다. 덕장을 한 평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오직 황태 아이템을 살리기 위해 해양수산부와 농림수산부를 찾아가 입씨름을 한 지도 벌써 7년이다.

“공무원을 설득하려면 공무원보다 법령을 꿰고 있어야 해요. 황태 법령에 관한 한 내가 공무원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처음에는 공무원들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사무관들도 내 말에 귀를 기울여요. 농촌 사람이 자본을 끌어들이려면 똑똑해져야 돼요. 데모만 해서는 말썽꾸러기 취급만 받는다니까요.”

이 대표는 그러나 집에서는 찬밥 신세다. 가정 경제를 챙기지 않아 적자 나는 해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쫓겨날 줄 알라’는 아내의 경고를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 대표가 이끄는 발길을 따라 용대3리를 둘러보니 밭뙈기들마다에 황태 덕장이 들어서 있다. 마을은 적막하지만 알고 보니 사람들은 모두 방에 들어앉아 덕장에 걸 명태를 꿰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겨울에는 일하는 사람들 일당을 10만원 정도 줘야 해요. 엄동설한에 명태를 덕장에 걸려면 손발이 꽁꽁 얼거든요.”


 

         ◇용대3리가 황태 명소로 자리하는 데는 오후 네 시만 지나면 햇볕을 보지 못하는

              지형적 요건이 큰 역할을 했다.

 

세상에, 글 쓰는 일 잠시 작파하고 용대리에서 한겨울만 보내면 10년, 20년 1만원에 머물러 있는 원고료 수입보다 훨씬 나을 것 같다. 겨울 한철에 원고지 9백 장을 메울 수 있는 작가는 흔치 않은 법, 시급 높은 용대리에서의 알바가 훨씬 생산성 있을 법하다. 마침 이 대표를 만나러 온 용대리 토박이 김상만(50)씨가 곁에서 한마디 거든다.

“내가 인제군 군의원인데, 도시 사람들은 지자체 의원이 놀고먹는다고 하는데 인제에서는 어림없어요. 아침 여덟 시에 나와 열두 시에 귀가하는 날이 다반삽니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 애경사 다 챙기지 않으면 표 떨어지는 소리 들리거든요. 민원 해결하랴, 심부름하랴, 자동차 기름값이 한 달에 60만∼70만원 들어요.”

짐작이 간다. 김 의원을 아래 위로 훑어보니 눈밭에 빠져도 안전할 등산화 차림이고, 위아래 옷은 막일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쉬운 작업복이다.

“돈 많이 벌면 노름으로 망가지는 사람들 많은데 고스톱들 많이 치겠네요.”

“무슨 말씀을… 여긴 겨울에 일하는 동네잖아요. 일하기 바빠서 노름할 시간이 없어요. 봄 여름 가을에는 민박도 쳐야 하고, 그래서 용대리 사람들은 사계절 내내 바빠 고스톱 못 친다 이겁니다.”

마을을 둘러보니 허름한 집이 거의 없다. 멀리서 보면 설악산 줄기 아래의 펜션촌 같은데, 그게 다 수입이 짭짤하기 때문이란다. 농림부나 해양수산부가 테마마을 지원사업을 펼치기 전에 자신들의 자본을 들여 황태축제를 개최한 곳이 바로 용대리란다.

“여기서 생산되는 황태가 우리나라 황태 시장의 10%를 점유해요. 전국 생산량의 70%인데 나머지는 뭔지 아세요. 중국산이라 이겁니다. 미치겠어요.”

어딜 가나 농촌의 고민은 하나다. 중국산. 이 대표가 이 얘기는 꼭 써 달라며 엄숙한 표정을 짓는다.

“명태는 이제 우리 연근해에서는 안 잡혀요. 모두 러시아에서 잡는데, 그래서 원산지 표시는 전부 러시아가 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중국에서 얼었다 녹은 황태와 용대리에서 얼었다 녹은 황태는 맛도 다르고 영양소도 달라요. 그래서 해양수산부에 가서 주장한 겁니다. 원산지 표시와 가공지 지리적 표시제를 함께 하게 해 달라. 그래야 차별화가 되는 건데, 그게 아직도 실행이 안 돼요.”

일리 있는 얘기다. 원산지 표시는 국제법대로 하되 가공을 어디서 했느냐를 병기하게 해 달라는 것인데 그게 왜 곤란한지 모를 일이다. 용대3리의 반경 2킬로미터 안에서만 황태가 되고, 2킬로미터를 벗어나면 명태를 그냥 말린 북어밖에 안 되는데 말이다.

                           ◇꿈이 없는 마을을 희망의 마을로 바꾼 인제 토박이 3총사.

                                     왼쪽부터 김상만 군의원, 이강열 대표, 최상기 실장.

 

전망대에 오르니 설악산에서 내리꽂히는 바람이 목덜미를 할퀴고 지나간다. 오후 네 시밖에 안 됐는데도 산줄기 너머로 해가 기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게 용대리의 에너지원이다. 한낮 잠깐 명태를 녹였다가 나머지 시간 내내 명태를 얼려 황태를 만드는 최적의 자연조건을 형성하는 것이다.

“용대리 사람들 정말 대단해요. 내가 공무원 생활 35년인데, 이 사람들은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니까요. 돈이 벌리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람들이 모여들게 돼 있는데 용대리가 바로 그 모델이죠.”

인제군의 감사실장을 맡고 있는 최상기(53)씨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최 실장의 말을 받아 이 대표가 덧붙인다.

“황태사업의 2차 목표까지는 달성했어요. 이젠 포장 디자인도 개발하고, 소량 품목도 개발하고 그래야 해요. 도시 사람들이 좀 까다롭습니까? 내년부터는 정말 땀나게 뛰어야죠.”

문득 농촌 공동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목소리가 스쳐간다. 그런 사람들에게 용대리는 하나의 사표라는 듯 저녁 해가 넓고 깊게 산자락 아래 마을을 비춘다. 석양은 과거형을 은유하지만 용대리의 저녁은 여전히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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