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22. 석촌호수. 1200*800
↓ 조선역사의 현장이 남아있는 석촌호수변.
▼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
병자호란은 음력으로는 1636년(인조 14년, 청 숭덕 원년) 병자년 12월 8일부터 정축년
1월 30일까지, 양력으로는 1637년 1월 3일부터 1637년 2월 24일[9]까지 이루어진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다.
삼전도의 굴욕이란 항례를 치러 당대 조선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전쟁이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의병의 구원을 바라면서 47일 동안 농성했으나, 각지의 근왕군마저도
청군에게 괴멸되어 더이상 희망이 없자 김류와 최명길 등이 "피폐(皮幣), 주옥(珠玉)을 바치는
일은 탕왕(湯王), 문왕(文王)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하고 성에서 나가기를 청하고
소현세자도 스스로 가서 인질이 되겠다고 청하자, 결국 주권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항복하여
청 태종에게 삼궤구고두례를 취하고 군신의 의를 맺는 굴욕을 당한다.
야사에는 인조가 이것을 하다가 소리가 안들린다고 홍타이지한테 한소리 듣고 소리가
더 나게 이마를 찧다가 피까지 났다고 하는데 한국사에서 왕이 몸소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린 최대의 굴욕 중 하나로 꼽힌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 줄여서 '삼전도비'가
세워지게 된다.
다시 말해 조선을 침략한 적장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조선 스스로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고종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이 무너지자 바로 삼전도비를 파묻었고, 일제가 이를 다시
일부러 복구했으나 이번에는 1956년 대한민국 제1공화국 당시 문교부에서 치욕의 상징이라며
또 파묻었다.
1963년 이걸 또 꺼내서 다시 훼손하지 못하게 사적으로 지정했는데 이번에는 2007년 2월 3일
30대 후반의 한 남자가 서울 한복판에 국가적 치욕이 버젓이 서 있는걸 볼 수 없다며 페인트로
훼손을 가했다.
그러다 약 3개월이라는 시간 끝에 복원에 성공했다.
비록 치욕의 역사라고 해도 역사는 역사라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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