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조14년 BC 5 에 하남 위례성에서 천도해온 이후 신라 문무왕 12년(AD 672) 토성(주장성,일장성이라 칭함)
으로 축성하였고, 조선 광해군 13년(1621)에 후금의 침입을 막고자 석성으로 개축하기 시작하였으나 준공치
못하고 이괄의 난을 격고난 후 16대 인조 2년(1624)에 재 시작하여 인조 4년(1626)에 준공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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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동부에 살던 퉁구스계통의 민족(여진족)을 춘추전국시대에는 숙신. 한나라때 읍루. 남북조시대 물길. 수.
당나라때 말갈. 10c초 송나라때부터 여진족이라 부른다.
고려초기부터 우리민족과 깊은관계를 맺으며 여진은 고려를 상국으로 섬기고, 고려는 이들을 회유하여 무역을
허락하며 귀화인에게는 집과 토지를주어 살게 했다.
이들은 숙종때 세력을 확장하며 1104.숙종9 이후 평양까지 진출하여 윤관을, 세조때 남이. 신숙주등으로 하여금
여진족을 토벌하게 하였다.
명의 세력이 약한 틈을 이용, 세력을 확장하여 광해군8년(1616) 누르하치가 선양에 후금(청)을 세우고 조선을
침공 정묘호란(인조5년)과 병자호란을 일으킨다.
산성에서 바라보이는 백제의 도읍지 하남 위례성.
소서노(召西奴, 기원전 66년?~기원전 6년?[1])는 비류를 시조로 하는 백제 건국 설화에서 나오는 비류와 온조의
연타발(延陀勃)의 딸이며, 북부여왕 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인 우태와 처음에 혼인하였다. 우태 사후,
동명성왕과 혼인하여 그를 도와 고구려 건국에 일조했다고 한다. 이후에 부여에 있던 동명성왕의 장자 유리명왕이
고구려에 올 때 주몽과 결별하고 비류와 온조 두 아들과 함께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했다고 전해진다.
130년된 1세대 소나무이다.
성을 축조하고 적으로부터 진영의 노출을 막기위하여 인위적으로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아래 사진은 2. 3세대의 나무들이다.
소나무가 많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송진을 채취하는과정에서 많은 나무의 폐해가 있었다.
함께 탐방길을 따라나선 딸래미에게도 많은 역사공부가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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