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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고향

조선의 실학자 서계 박세당(西溪 朴世堂)(1629~1703)

by 江山 2012. 9. 18.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197번지.


「어떤 시련에도 세상에 고개를 숙이거나 소침해하지 않는다」라고 썼던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굽히지았았던

서계는 관료로서 탄탄대로를 달리며 세상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지만 타협과 쟁론을 멀리했다.

세상의 영욕에서 벗어나 학자로 돌아와 이곳 수락산 석천동에서 낮에는 재야경세가로서 땀을 흘리며 채전을 

일구고, 밤이면 초옥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학문에 열중하였다.  








▼ 궤산정안내석.


▼ 서계가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원래의 건물은 사라지고 후에 중건한 것이라는데,

   허물어져가는 형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취승대. 석천동, 서계유거는 선생의 친필로 음각되어 있다.









▼ 청풍정의 초석.


▼ 노강서원.



 

인현왕후는 숙종의 첫째왕비 인경왕후가 죽고, 1681년에 계비가 된다.

왕자를 낳지못해 왕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여 1688년 숙원장씨(희빈)가 윤(경종20대왕)을 낳는다.

1689년 민씨가 폐위되고 희빈장씨가 왕비로 책봉되고,

1694년 김춘택,한중혁등의 폐비복위운동을 계기로 갑술환국이 일어나 남인이 밀려나고 소론이 정권을

장악하자 장씨는 희빈으로 내려지고 민씨가 다시 왕비로 복위되나 1701년 8월에 원인모를 질병으로 죽는다.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저주한 사실이 발각되어 사약을 받게되는 사악한 여인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