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 Column

이쁘던 내동생과 옥수수.

江山 2011. 9. 3. 00:24

7월이다.

7월의 어느날인지는 모르지만 옥수수가 익어가던 그때가 이맘때다.

그리고 40년이 훨씬넘은 세월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

무수한 세월이 흐르고 나도 50고개를 넘고보니 자꾸만 옛날생각이 많이 난다.

아마 나이를 먹어가는가보다.

 

해마다 이맘때면 생산되는 옥수수이지만, 오늘은 생각지도않았던 옥수수 한보따리 선물을

받고나니 잊었던 기억을 또다시 떠오르게 하는구나.

어린시절 내 이쁜동생은 가족들곁을 떠났다.

셋째딸의 이쁜모습으로 모든이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내 동생은

나도 어렸기에 몇살 차이인지도 모를 그런 시절에 동생의 손을 잡고 이웃을 돌며 놀러다녔으니

아마 너댓살이 되지않았을까 생각된다.

 

함께 손잡고 놀러다니면 이웃사람들에게 동생이 이쁘다는 칭찬을 듣는것이 기분이 좋아서

나 스스로도 괜히 마음이 흡족하여 너와함께 다니는 일이 내게도 좋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의학이 발달하여 큰 문제가 되지도않았을 것을 , 그 옛날에는 의술도 부족했고

부모들 또한 지식이 짧아서 우리들 곁을 떠나게했던 과거가 원망스럽구나.

무슨 병인지도 알 수 없는 너를 들쳐업고 엄마는 백방으로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녔지만

돌팔이 의원에게 침 한대맞고 축 늘어졌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한없이 안타까운 눈물만 난다.

그 길로 힘없이 너는 영원히 우리들곁을 떠났고, 네가 죽엇다는 소리를 들었을땐 슬픔보다는

그때는 차마 네모습을 본다는게 두려워서 보기싫었단다. 

 

옥수수가 익어가는 이맘때 너는 우리들곁을 떠나려고 예비한것처럼 그렇게 옥수수타령을 했지.

"엄마 옥수수 따 먹자"

그렇게 엄마에게 매달려 옥수수를 먹고싶어했는데 언니오면 따먹자며 미루었던 엄마의 마음을

그 이후에는 원망처럼 느끼게 되었다.

당시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아마 가난한 시절에 입식구하나 덜기위해 어린나이지만 언니는

남의집이나 공장으로 일을 떠났던것 같았다.

부모의 입장에서 그 딸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여서 집에오면 함께 옥수수파티를 할 심산이었던것

같았는데 그 며칠사이를 못참고 너는 병을 얻고 말았다.

그리고 언니가 오기도전에, 원하던 옥수수도 먹어보지못하고 영원의 길을 떠날줄이야.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손녀딸을 잃은 할머니는 매일 뒷산에가서 목놓아 울던모습이 생생하고, 자식잃은 엄마 아부지의

마음은 또한 얼마나 까맣게 탔을까.

너는 그렇게 남은자들에게 애간장을 녹게하고 그동안 한번도 집에 찾아와보지않는 이유가 뭐니.

그렇다, 그동안 이사를 많이다녀서 아마 집을 찾을 수도 없었을 테지.

그동안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정신줄을 놓으신 상태이지만, 우리들은 이렇게 형제들과

죄인처럼 살아가고있는데 미안한 마음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난 옥수수를 먹지않게되었다.

맛이 없는걸...

오늘의 옥수수선물을 보며 자꾸 눈물이 난다. 아주 오래된 일인데도 말이다.

이 오빠가 주책인게지.